미륵사상이 민중운동과 구체적인 연관성을 맺고 나타나는 것은 통일신라 말기 진표의 새로운 미륵사상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. 그는 당시까지 상생신앙적 면에서 지배층에 이용되던 것을 하생신앙으로 재조명하였다. 그가 새 사회의 이상향으로 내걸었던 것은 구백제가 추구했던 용화사회의 낙원이었고 이는 백제를 부활시키려는 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. 그는 당시 사회의 이상향이 잘 드러난 미륵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륵불교가 융성했던 구백제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는데, 이후 궁예의 난 및 동학농민전쟁 등 많은 농민 운동들이 구백제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은 주지할만한 사실이다.
사실, 불교가 전래되던 삼국시대에 미륵신앙은 각 사회의 정치권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정착하였다. 특히 미륵사상이 융성했던 백제와 신라를 살펴보면 각자의 지배층들이 국가체제를 정비해 가는 과정에서 미륵사상을 하나의 지배층 중심의 이데올로기로 이용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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